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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3. 희망의 내일을 위하여
곡식신미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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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1 추천 4 10/06 02:45

 쪽빛의 마검들이 눈앞에 넘실거린다. 잿빛의 꽃잎이 공기를 타고 흩날린다. 파란 빙정이 하늘에서 우수수 쏟아져 내린다. 마검에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고, 꽃잎에 방어막이 깨지고, 빙정에 건물이 무너진다. 우리들의 최후의 보루가 적들에게 부서진다. 우리들의 모든 전력이 모여 있는 유수의 행성이 가볍게, 아주 가뿐히 짓밟힌다.
 우리가 몇천 년간 응집한 자료와, 무기와, 전술 들이 하나같이 무용해지고, 확고한 목적 아래 결속해 있는 우리 종족을 조각냈다. 이제 남은 건 이 도시를 지키는 군단과 지하의 절대 뚫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쉘터 안에서 몸을 벌벌 떨며 죽은듯이 꼼짝 않고 있는 수십만의 시민들뿐이다.
 그러나 수천여 명의 군단을 상대로 강림한 것은 고작 3위뿐이다. 그래, 고작 세 명의 신에게 이 행성에 주둔하고 있던 장병들이 모두 전멸했다. 뾰족한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던 리코 산맥은 거대한 검에 잘려나가 3대 곡창지대보다 더 넓은 고원이 되었고, 3대 곡창지대 중 두 곳의 황금 밀밭과 논은 잿가루에 범벅이 되어 몇 년, 아니 그 이상의 기간 동안 곡식을 생산할 수가 없게 되었으며, 공전고리 안쪽에 위치하던 남대륙은 남극해부터 시작된 바닷물 빙결이라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재해에 대륙마저 얼어붙었다. 하늘은 잿가루에 막혀 빛을 받을 수가 없고, 비가 내리지 않는 대신에 사람 머리통만 한 우박이 떨어졌다. 중위도에서는 편도풍을 거스르는 태풍이 여럿 생겨 약해지지도 않은 채 각 대륙들을 휩쓸었다. 이 모든 일이 고작 일주일만에 일어났다.
 우리는 고작 재래식 무기에 의지해야 했고 급조로 지어낸 철근콘크리트 건물에 몸을 뉘어야 했다. 도시의 마천루는 하나같이 부서져 버렸고 녹음이 우거지던 공원은 앙상한 잔가지만이 남아 황폐한 느낌을 주었다. 도시의 수도관들은 전부 터져 망가졌고, 이곳으로 향하던 매설 공중선들은 어느샌가 끊어져 있었다. 문득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면 빨갛게 빛나는 유성이 보였는데 알고보니 파괴된 인공위성 잔해물이었다. 도시 내에 드문드문 존재하던 가스 충전소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불타올랐으며 면직물이나 목재 가구를 제작하던 공장에서 치솟는 불길의 열기는 도시 외곽에 자리 잡은 영내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식수와 전기를 잃은 우리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10분에 한 번씩 꼬르륵 소리를 들어야 했고 옛날에나 쓰이던 정수 장치를 이용해 오줌을 식수로 바꿔 병사마다 정해진 양을 배분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쉘터에 지상 못지 않는 인프라를 구축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하루에 물 500ml와 즉석밥 한 공기, 참치 캔 하나 정도일 뿐, 진짜로 전쟁 이전의 삶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적의 일방적 학살은 계속되는 중이고, 우리 병사들은 살아남은 시민을 구하기 위해 폐허로 향한다. 돌아오는 병사는 열에 둘셋밖에 안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찬 내일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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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살당한 브레니안 행성의 병사의 수기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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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사의 수기가 기록된 종이를 보던 기록관이 눈을 가늘게 뜨며 검혈을 노려보았다.
 "진짜 쓰레기였네요. 선빵이야, 천상계인들이 먼저 친 거라고 해도, 실계인까지 죽인 건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자기네들 행성민을 차출해서 전쟁한 건 아니었네요?
 그래요, 신들의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이건 선을 넘었잖아!!!!! 그러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저들 위에서 착한 척 위선이나 떨어?!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이들에게 숭배받으며 그들을 기만하니까 어떠세요, 기분 좋으신가요? 막 즐겁고 행복하고 그래요?
 죽 닥치고 있지 말고 뭐라 말을 좀 해봐!!!!!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다 큰 어른이 조그만 애 하나 짓밟고 논 격인데 이딴 걸 수행한 게 잘한 짓이야?!!!!!!!!! 그 잘난 머리로 핑계든 뭐든 말해보라고!!!!!!!!!
 ......됐다. 이미 끝난 일이지만, 정식으로 창조자 회의에 승계 될 겁니다. 또한! 이 차원의 관리자로서, 이 일의 책임자를 문책하고 그 휘하 구성원들에게도 합당한 벌을 내릴 테니 그 기간 동안 조용히 있길 권고드립니다. 그리고 다음부턴 제게 직접 오지 마시고 초계를 통해 보고해 주시죠. 엄연한 보고 계통이 있는데 직통으로 제게 오는 건 보기 안 좋습니다. 이만 나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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